[데스크칼럼] 힘 있는 자의 직소민원 이제는 그만 > 실시간

본문 바로가기


실시간
Home > 건강 > 실시간

[데스크칼럼] 힘 있는 자의 직소민원 이제는 그만

페이지 정보

편집국장 이상문 작성일19-08-08 19:00

본문

↑↑ 편집국장 이상문[경북신문=편집국장 이상문] 조선 초기 태종은 즉위하자마자 대궐 밖 문루에 북을 매달았다. 백성이 억울한 일을 당해 관할 관청에 신고했으나 해결이 되지 않는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북을 두드리게 했다. 북이 울리면 임금의 직속인 의금부당직청에서 민원을 접수하고 임금에게 직접 아뢰도록 했다. 이른바 신문고다.

  신문고는 백성들이 나라에 관계된 억울한 사연이나 목숨이 경각에 걸린 범죄와 억울하게 뒤집어쓴 누명 등을 고발하도록 한 민의상달의 대표적인 제도였다.

  이처럼 민주적인 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관할 기관의 지지부진한 민원 처리에 갑갑함을 느낀 백성들이 신속하게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무질서하게 이 제도를 이용하는 역기능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조선 초기 관리들이 백성의 민원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 주는 데 미온적이었던, 권력 남용의 전형적인 모습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기 전 각 지자체에서는 '직소민원실'을 운영했다. 그 제도의 근간은 신문고에서 유래했다. 시민의 민원을 기관의 담당자가 쥐고 시간을 끌거나 직권을 남용해 고의로 민원을 반려하는 일을 막기 위해 단체장에게 직접 민원을 제기하도록 하는 제도였다.

  하지만 이 제도도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했다. 민원을 제기하고자 직소민원실을 방문한 시민들은 단체장을 만나기는커녕 담당 부서장도 만나기 힘들었다. 민원과 직접 연관이 있는 담당자가 민원을 접수하는 정도에 그쳐 직소민원의 취지를 달성하지 못했다. 어지간한 뒷배가 없는 시민들은 일반 민원 제기와 다름없는 직소민원 절차를 거치면서 세월을 허송했다. 전형적인 행정 편의주의,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이었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고 난 후 등장한 신문고는 '열린 시장실'이다. 시장을 만나기 위해 담당 직원과 먼저 협의하고 비서실에서 일정을 조율하는 '길고 험한' 절차를 생략하고 시장이 그 기관의 민원실이나 시민이 드나들기 쉬운 사무실에 책상을 하나 두고 일정한 날을 정해 무작위로 시민의 목소리를 듣는 제도다.

  그러나 열린 시장실의 문은 항상 열려있지만 시장을 만나는 문은 닫혀 있었다. 단체장들은 '열린 시장실'을 운영하는 특정한 날짜에 이미 예약된 내방객을 그곳으로 불러들여 사진을 찍고 언론에 홍보하는 절묘한 방법을 터득했다. 약속된 내방객과 시간을 끌다가 '열린 시장실'의 문을 닫아버리니 일반 시민들은 시장 만나기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은 불문가지다. 그러므로 이 제도도 단체장의 홍보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최근에는 어느 지자체는 '시민 신문고위원회'를 두고 시민들의 민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제도를 펴고 있다. 신문고위원회에서는 시민들의 답답한 민원을 접수해 법리적으로 검토하고 행정의 잘못된 조치가 발견되면 바로잡을 것을 권고한다. 물론 이 권고는 강제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집행부에서 거부해 버린다면 방법이 없다. 그러나 신문고위원회는 시장 직속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그 권고를 가볍게 여기고 눙치기에는 많이 불편하다. 제법 선진화 된 제도인 것은 분명하다.

  신문고의 흐름은 역사적으로 이러하다. 그런데 단체장을 직접 만나 민원을 제기하는 부류는 자고이래로 존재한다. 일반 힘없는 시민들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제법 힘깨나 쓴다는 유지들은 무시로 단체장의 방문을 열어젖힌다. 비서실에 선약을 하지 않고 불쑥 찾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다. 최소한 지켜야 할 절차와 예의도 무시하는 그들은 과연 어떤 존재들일지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단체장을 만나 자신의 민원과 자신의 주변 인물들이 내놓은 민원을 단체장에게 직소한다. 단체장은 그런 부류의 인물이 던지는 민원을 가볍게 여기지 못한다. 선거 때 그들이 몰아올 수 있는 표를 계산하면 내치기도 받아들이기도 난처한 올무에 걸리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닐 것이다.

  시장 비서실은 매일 이들과의 전쟁을 치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발 선약을 좀 하고 방문해 달라고 말하기에도 버거운 대상들이 무시로 들락거리는 시장실에 일반 시민들이 한 번 방문하기에는 적지 않은 공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선출직 단체장이 겪는 불가피한 폐단이다. 그들이 들고 오는 민원은 공익에 부합하는 것들도 있지만 더러는 개인의 이익과 관계된 것들이 많다. 민주주의가 성숙한 국가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로 일어난다.

  힘 있는 사람이 직소민원을 독점하는 일은 제발 끝나기 바란다. 시장이 원만하게 시정을 추진하는 데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일반 시민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도 생각해야 한다. 시장과의 친밀한 관계의 사람일수록, 권력 위에 군림하는 힘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욱 자중하고 양보해야 할 일이다.
편집국장 이상문   kua348@naver.co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이메일무단수집거부
Copyright © 울릉·독도 신문. All rights reserved.
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